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에 어둑함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버스를 기다릴 때부터 밴드로 모여든 친구들의 이야기가 한창이다. 날씨부터 시작해서 일상에도 목숨처럼 덤벼드는 모습을 보면.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에 있는 철웅이가 들어온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철웅’이라는 말이 가슴에 맴돈다. 철웅이는 동창이지만 그리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다. 그저 미국에 살고 있는 동창들 중 한 명이라는 정도로. 그러다가 친구로 가까워지게 된 것은 4 년전, 그러니까 내가 미국에 갔을 때부터였다.
가장 친했던 영준이가 미국으로 이민가고 나서부터 한 번 꼭 다녀가라는 말에 기약 엾는 약속을 되풀이 했었는데 마침 회사 일로 그 곳에 가야하는 일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한인타운에서 만난 영준이와 나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부둥켜안고, 반가움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나하고 민석이는 한인타운에 살고 있어서 괜찮은데 철웅이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살고 있어서 오기에는 좀 무리일 것 같아.“
그 때도 나는 철웅이라는 이름이 낯설기만 했다. 그럴듯한 멕시코 전문 음식점에서 지난 추억을 곁들이며 한창일 때 철웅이가 나타났다.
친구들의 놀란 눈빛에 철웅이는 머쓱한 웃음으로 답을 하고는 나와 마주했다.
“와야지. 네가 왔으니 열 일 제치고 와야지. 너희은 몰라. 그 때 내가 좀 늦게 철이 들어서 공부 때문에 애 좀 먹었지. 마지막 기말고사 때 평균 60점 미만이면 대학입학 시험 볼 자격이 안 되는 거야 그런데 그 때 반장인 민이가 시험 시간마다 지우개에 답을 적어서 보내준 거야. 결국 내가 평균 70점이 넘었다는 거 아니냐. 고맙다“
나는 그제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시간을 꺼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때의 일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반면 철웅이는 삶의 커다란 줄기로 자리 잡아 장장 네 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코끝이 찡해졌다.
반가움에 급한 마음으로 밴드에 말을 섞는다.
‘철웅이 오는 대로 날 잡아서 한 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