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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코끼리 인형과 할머니 ju********2019.01.21


오늘은 23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제사를 지내는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안양에 있는 외삼촌댁으로 가야 했다. 바쁜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던 나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는 분홍빛 코끼리 인형에 눈길이 갔다.내가 어릴 때는 그 인형을 말처럼 타고 놀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다. 그동안 털도 많이 빠지고 색깔도 많이 엷어졌지만 우리 가족들 중에는 아무도 그 인형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 코끼리 인형은 외할머니께서 나에게 돌맞이 선물로 주셨던 인형이기 때문이다.
“너는 여름에 태어났잖니? 그 날은 날씨도 무척 더웠단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 문을 여니 외할머니께서 담을 뻘뻘 흘리시며 커다란 인형을 안고 서 계시지 않 겠니? 아무 연락도 없이 오셔서 놀라기도 했지만 그렇게 큰 인형을 서울에서 우 리 집까지 들고 오셨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더구나. 더구나 외숙모한테 들어 서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외할머니께서는 동네에서 인형에 장식품을 붙여주는 부 업을 하고 계셨단다. 그런데 첫 외손녀인 너에게 돌맞이 선물로 인형을 주려고 한 달 동안 일하신 품삯대신 코끼리 인형을 가져 오셨다는 구나.”
나는 가끔 엄마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 얼굴을 떠올리지만 그 때마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지금도 가끔 엄마는 외할머니 생각이 나면 코끼리 인형을 꺼내어 손질을 하시며 외할머니 이야기를 꺼내신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눈시울은 빨개지시곤 한다.저녁때가 되어 외삼촌댁에 도착한 나는 외할머니를 사진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진을 보자 나는 내 방에 있는 분홍빛 코끼리 인형이 떠올랐다. 외할머니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계시지 않지만 내 마음 속에는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국화꽃으로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새벽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 속에 외할머니의 얼굴이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코끼리 인형과 함께.